과학기술 투자는 미래와 직결
연구원 자율운영시스템 전환
지역 연구 생태계 복원 필요

이성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
지난 10월 이후 국회와 언론 보도를 통해 '2024년도 R&D 예산 삭감 과정 조사보고서' 내용을 알게 되었다. 2023년 6월 말 이후 당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급변한 국가연구개발 사업 예산 편성 과정은 대체로 이미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최상목 당시 경제수석의 발언은 예산 삭감 못지않게 실로 충격적이다.
"R&D 예산 뿌려주기는 예산 지원을 통해 지지를 얻으려는 것인데 이런 걸 삭감해야 한다", "기재부는 엘리트라서 카르텔이 아니지만 과학계는 카르텔이고 연구개발사업 예산도 나눠먹기가 심하고 그 비율이 심하다"와 같은 말이 어찌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수석의 입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2023년 6월 2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사업은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말했다. 언론은 정부가 마치 연구개발 카르텔과 전쟁을 시작한 것처럼 다투어 보도했다. 법으로 명시해둔 과학기술예산 관련 법 절차를 대통령은 철저히 무시했다.
최상목 당시 경제수석은 연구개발 예산을 아예 10조 원으로 삭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드러났다. 10조 원은 당시 주요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3분의 1 수준이며, 2008년도 정부 연구개발예산 규모와 비슷하다.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은 듣지 않았고, 과기정통부의 의견도 묵살했다. 과기정통부 장관이 예산 삭감으로 인한 문제점을 적시하며 장문의 문자를 보냈지만 대통령은 답하지 않고 도리어 화를 냈다고 한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 1년을 제외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이 삭감된 적은 없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하는 공감대가 일정하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당초 31조 1000억 원으로 편성했던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을 무려 4조 6000조 원 삭감하여 26조 5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그로 인한 연구 중단, 연구자들의 국외 유출 등 부작용과 과학기술계에 미친 충격파는 오래도록 어두운 그림자를 남길 것이다.
지난 12월 5일, 2026년도 정부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연구개발사업 예산은 2025년에 견주어 5조 9000억 원 증액하여 35조 5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윤석열 정부의 폭력적 예산 삭감에서 벗어나 기초연구, 인재 양성, 출연연구기관, 지역 연구개발사업 등 연구 생태계를 복원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과학기술계 국책연구기관의 경우 1996년부터 30년간 공고하게 유지했던 연구과제중심제도(Project Base System, PBS)를 폐지하고 새로운 예산회계시스템을 구축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오로지 인건비 확보를 위해서 연구과제 수주 경쟁에만 매달렸던 연구자들이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다만, PBS 폐지에 따른 이행방안으로 제시한 전략연구사업에 대해 현장 연구자들과 대다수 전문가들은 또다른 PBS라는 족쇄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전략연구사업 예산을 출연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사유를 빨리 개선하여 2027년에는 연구과제중심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고 실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중심 역할을 정부 관료가 지배하는 시스템에서 현장 연구자들에 의한 자율 운영 시스템으로 바꾸고 활성화할 때 가능하다. 연구개발예산 삭감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고,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어 '국가미래지도'를 그리고 실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성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
원문보기: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56/0000158639?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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